외계 대 침공 7일개봉 다시보기

영화정보
  • 외계 대 침공 7일개봉 다시보기
감상평 1
역사에 포함된 사건이라던지 하나골라서설명해주심됩니다. 그에대한 느낀점도 포함해서 써주심 감사내공추가해드리구요  정 곤란하시다면야, 사이트로 답변해주심 정말 감사해요. ㅎㅎ그리스, 헬리니즘, 로마의 역사와 그리스도교의 성립과 발전에 대해서 정리된 사이트!!     아,,, 제가 내공을 조금밖에 못걸어서 태클거실분 있으실것같은데;;;답변해주신다면야 내공은 더 추가해서 드리겠습니다. 최초 내공 50정도로~~^^  이상 질문드렸구요, 성의것 답해주심 감사하겠습니다..ㅜㅜ  외계 대 침공 7일개봉 1. 그리스의 역사에 대해서 간단하게  요약 (최대 5줄에서 10줄까지 해주세요, 단 A4용지로 5줄에서 10줄입니다, 그리스의 역사 중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요약해주셔도 괜찮습니다, 단, 네이버에 백과사전의 자료는 쓰지말아주세요. ) 2. 헬레니즘의 역사에 대해서 간단하게 요약 3. 로마의 역사에 대해서 간단하게 요약 4. 그리스도교의 성립과 발전 에 대해서 간단하게 요약( 그리스의 됴교가 어떻게 성립되고 발전되었는지 간단하게 설명부탁드립니다. )  참 알록달록하네요. ㅋㅋ무튼 1,2,3,4 질문다 5줄에서 10줄이내로 요약해주시구요. 역사를 다 요약해달라는게 아니라 그
감상평 2
중학교 2학년 사회같군요어떻게 간단하게 요약할수가 없어서 그냥 가따붙혔음 ㅈㅅ 님이 중요한것만 빼가세염뭐 폴리스 어저구 그런거 나오져 ㅋ(폴리스:도시국가) 먼져 정치순서부터왕정 - 귀족정 - 금권정 - 참주정 - 민주정 - 페르시아전쟁 - 페리클레스시대- 펠로폰네서스전쟁 - 중우정
기본적인 순서입니다.
처음에는 왕정과 귀족정이 계속되다가 시민세력의 성장으로 재산에 따라 참정권을 주는 금권정이 실행되고요(솔론) 그 뒤에 페이시스트라토스의 독재에 따라 참주정이 나타납니다.(독재라고 표현은 했지만 약간 거리가 있습니다. 빈농보호등 좋은일도 많이 했스니까요) 이넘이 죽은후에 클레이스테네스가 도편 추방법, 행정부족제(전문용언데요;; 귀찮아서 설명은;;; 직접 찾아보세요 도편추방법은 아시죠? 도자기 파편에 참주가 될만한 사람의 이름을 적은후 많으면 추방하는것)
페르시아전쟁에서 승리로 그리스는 황금기를 맞고요 페리클레스라는 훌륭한 장군(다른 관직은 추첨이었지만 장군직은 선거로 했다고;;; 전문직이니까)덕분에 발전을 많이 합니다. 이때 가난한 사람도 관직에 나갈 수 있는 수당제와 추첨으로 관직을 뽑는 추첨제가 실현되죠 그러나 페리클레스의 사후 스파르타와의 전쟁인 펠로폰네서스전쟁에서의 패배로 황금기는 끝나고 쇠퇴기인 중우정이 나타납니다.(단적인 예로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한것 또라이들의 정치라고들 하죠;;) 헬레니즘 역사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로스가 5세기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쇠퇴한 아테네와 기타 그리스의 폴리스를 점령하고 페르시아, 이집트등 여러 지역을 차지하여서 알렉산더로스제국을 만드는데 이때 넓은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서 먼저 할것이 문화차이를 극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복지 곳곳에 도시를 세워 그리스인을 이주. 그리스인과 정복민을 결혼 시킴으로서 동서 문화의 융합에 힘썼다고 할수 있죠.그리고 이때 그리스인들이 인도에 문화를 전해줌으로 해서 "간다라 미술"이라는 양식이 탄생했습니다. 당시 인도 인들은 "불상"이라 불리는 조각품 하나 없이 부처를 섬기고 있었는데 그리스 인들이 인간의 모습과 신의 모습을 비슷 하게 하여 석상을 만드는 것을 보고 "간다라 미술"을 탄생시켰다고 합니다.  또, 헬레니즘 문화에는 철학과 자연과학이 발달 하였는데요..자연과학으로는 유클리드의 기하학과 아르키메데스의 수학,물리학에서의 업적이 뛰어납니다.철학에서는 개인주의 사상의 발달이 이루어 졌는데요.에피쿠로스 학파- 쾌락주의 스토아 학파-금욕주의 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이런것들중에서 가장 중요한건 뭐니뭐니해도 그리스 문화와 동방 문화의 융합이 세계역사에 끼친 영향이 제일 클 것으로 생각됩니다.^^많은 도움 됬으면 좋겠네요.  로마의역사 연표 ㅋ753년 로물루스에 의해 로마 건국715∼673. 제2대 왕 누마673∼641 제3대 왕 툴루스641∼616 제4대 왕 마르티우스615∼579 제5대 왕 타르퀴니우스579∼534 제6대 왕 세르비우스534∼509 제7대 왕 거만한 타르퀴니우스509년 왕정폐지 공화정으로 전환. 494년 귀족과 평민의 투쟁 시작, 호민관 설치453년 로마, 그리스에 시찰단 파견449년 최초의 성문법인 12표법 채택396년 독재관 카밀루스, 에트루리아의 도시 베이 공략
성립. 타렌툼 전쟁. 264∼242 제1차 포에니 전쟁218∼202 제2차 포에니 전쟁218년 한니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침공213년 한니발, 이탈리아 남부 도시들 공략208년 하스드루발(한니발의 동생) 에스파냐를 출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격205년 스키피오, 집정관으로 선출됨202년 자마 회전. 스키피오, 한니발 격파183년 한니발 자살171∼168 마케도니아 전쟁168년 마케도니아 왕조 멸망149년 제3차 포에니 전쟁 발발146년 카르타고 멸망. 로마의 속주가 되어 속주 아프리카로 불림. 133년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호민관에 취임, 농지개혁에 착수, 반대파에게 암살당함.133년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에스파냐 원주민의 반란 거점인 누만티아 제압123년 가이우스 그라쿠스, 호민관에 취임하여 형의 유지를 이어받아 개혁에 착수121년 반대파에 몰려 가이우스 그라쿠스 자살119년 마리우스, 호민관에 취임107년 마리우스, 집정관이 되어 군제개혁에 착수91년 호민관 드루수스, 모든 이탈리아인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 제출, 반대파에 암살당함. 동맹시 전쟁 발발. 89년 동맹시 전쟁 종결. 모든 이탈리아인에게 로마 시민권 부여. 88년 술라, 집정관에 취임. 술라와 마리우스의 대립으로 로마는 내란에 빠짐. 87년 킨나와 마리우스, 로마 장악. 술라와의 투쟁 격화. 86년 마리우스 사망. 킨나 독재 시작. 81년 술라, 무기한 독재관에 취임하여 국정개혁 착수. 78년 술라가 죽고 폼페이우스 대두. 73년 스파르타쿠스 반란. 71년 크라수스, 스파르타쿠스 반란군 진압. 70년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 집정관에 취임. 카이사르, 회계감사관에 취임.먼 에스파냐에 부임. 69년 클레오파트라,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둘째딸로 태어남. 67년 폼페이우스, 지중해 해적을 소탕하여 지중해 전역에 팍스 로마나 확립. 63년 폼페이우스, 오리엔트 평정. 지중해 전역이 로마의 패권하에 들어옴. 카이사르, 호민관 라비에누스의 협력으로 최고제사장에 취임. 키케로, 집정관에 취임. 옥타비아누스가 태어남. 61년 카이사르, 먼 에스파냐 총독으로 부임. 60년 카이사르, 귀국하여 이듬해 집정관에 출마. 폼페이우스·크라수스와 손잡고 삼두정치 결성. 국가 개조의 첫걸음을 내딛다. 59년 카이사르, 집정관에 취임. 율리우스 농지법을 민회에서 가결하여 원로원파에 타격을 가함. 북이탈리아·일리리아·남프랑스 속주 총독이 됨. 총독으로 나가 있는 동안 로마에서 수족처럼 움직여줄 사람으로, 장인인 피소와 폼페이우스의 오른팔인 가비니우스를 이듬해 집정관에, 클로디우스를 호민관에 포진시킴. 카이사르,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12세를 복위시킴. 58년 카이사르, 갈리아 총독에 부임. 부사령관은 라비에누스. 갈리아 전쟁 1년째. 브장송에 월동 숙영지 설치. 키케로, 그리스로 망명. 57년 갈리아 전쟁 2년째. 오를레앙에 월동 숙영지 설치. 삼두정치에 대한 원로원파의 반격56년 갈리아 전쟁 3년째. 카이사르·크라수스·폼페이우스의 루카 회담. 노르망디 지방에 월동 숙영지 설치. 55년 갈리아 전쟁 4년째. 아미앵에 월동 숙영지 설치. 카이사르, 제1차 브리타니아 원정 감행. 루카 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가 집정관에 취임. 마르스 광장에 폼페이우스 극장 완성. 크라수스, 임지인 시리아로 떠남. 54년 갈리아 전쟁 5년째. 아미앵에서 월동. 카이사르, 제2차 브리타니아 원정. 측근인 발부스와 오피우스를 통해 포로 로마노 확장사업에 착수. 원로원파와 삼두정치파의 대치로 정국이 혼란에 빠짐. 53년 갈리아 전쟁 6년째. 독일 서부와 디종 부근 및 상스에 월동 숙영지 설치. 크라수스, 파르티아 원정 개시. 52년 갈리아 전쟁 7년째. 아르베르니 족장인 베르킨게토릭스가 로마에 맞서 궐기. 알레시아 공방전. 베르킨게토릭스, 항복하고 포로가 되다. 51년 갈리아 전쟁 8년째. '갈리아의 로마화'에 착수. 클레오파트라,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함께 이집트의 공동 통치자가 됨. 50년 카이사르, 북이탈리아 속주로 돌아오다. 원로원파, 카이사르의 오른팔 라비에누스에게 접근. 카이사르는 호민관 쿠리오를 앞세워 원로원파에 대항. 카이사르 군단에 대한 해산 명령을 둘러싼 카이사르파의 신임 호민관 안토니우스와 원로원파의 정치투쟁이 계속.49년  1월 7일 원로원, 카이사르에게 '원로원 최종 권고' 결의. 외계 대 침공 7일개봉 390년 켈트족 침입, 로마 점령367년 리키니우스 법 성립 -로마의 과두정치를 결정, 정부의 모든 요직을 평민에게 개방358년 라틴 동맹 경신338년 이탈리아 중남부로 진출 개시. 라틴 동맹 해체. 로마 연합 성립312년 아피아 가도 건설287년 호르텐시우스 법
  1월 12일 카이사르, 1개 군단을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주사위는 던져졌다!") 리미니에 입성. 호민관 안토니우스 및 카시우스가 합류.
  1월 17일 폼페이우스, 로마를 탈출. 키케로에 이어 집정관 마르켈루스와 렌툴루스도 탈출.
로마는 대혼란에 빠짐. 카이사르와 결별한 라비에누스, 카푸아에서 폼페이우스 진영에 가담.
  2월 25일 폼페이우스, 브린디시까지 후퇴한 후, 3월 17일에는 그리스로 탈출. 카이사르, 이탈리아 반도를 사실상 제패하고 19일 로마로 떠남.
  3월 30일 로마로 강행군하던 카이사르, 포르미아의 별장으로 키케로를 찾아가 회담을 함. 외계 대 침공 7일개봉
  12월 2일 카이사르, 로마에 들어가다. 독재관에 지명됨. 반술라파의 자손에 대한 공직추방령을 해제, 각 속주 총독에 카이사르파를 임명. 새 화폐 발행을 비롯한 경제정책을 실시. 이듬해인 기원전 48년도 집정관에 선출됨.
  12월 13일 폼페이우스를 추격하기 위해 로마를 떠남. 48년
  8월 9일 파르살로스 회전. 폼페이우스군 완패, 이집트로 건너감. 카이사르, 폼페이우스를 추격, 안토니우스를 부독재관인 기사단장에 임명하여 로마 본국의 통치를 맡김.
  10월 4일 카이사르, 알렉산드리아에 상륙. 47년 카이사르, 『내전기』 전3권 완성.
카이사르, 소아시아에 상륙, 카파도키아 지방의 젤라에서 파르나케스를 격파("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외계 대 침공 7일개봉   6월
  9월 카이사르, 로마에 개선하여 5년 임기의 독재관에 임명됨. 46년 카이사르, 탑수스 회전에서 스키피오군을 대파. 스키피오와 아프라니우스는 살해됨. 카토도 자살하다.
  7월에 로마에 귀환하다.
  8월 5일부터 네 차례의 개선식 거행. 율리우스력(태양력) 채택. 국립 조폐소를 창설하다. 45년
카이사르, 에스파냐 속주에서 반카이사르파가 봉기하자 에스파냐로 떠나 3월 17일 문다 회전에서 폼페이우스를 격파. 팍스 로마나를 확립하고 민생을 풍족하게 하고 공화정을 제정으로 바꾸기 위한 전면 개혁에 착수. 44년
  1월 카이사르의 동료 집정관에 안토니우스 취임. 외계 대 침공 7일개봉
  2월 원로원과 민회, 카이사르를 종신 독재관에 임명.
  3월 15일 카이사르, 원로원 회의장인 폼페이우스 회랑에서 브루투스 일당에게 암살.
  3월 16일 옥타비아누스(당시 18세)를 제1상속인·양자·성명 계승자로 지명한 카이사르 유언장이 개봉되다. 로마에 체류중이던 클레오파트라, 카이사르의 아들이라는 카이사리온과 함께 이집트로 떠나다.
  3월 17일 안토니우스가 소집한 원로원 회의에서 암살자들의 형사 책임은 추궁하지 않고, 요직 인사를 비롯한 카이사르의 정책을 계승하기로 결정.
민중의 분노가 고조되다. 43년 외계 대 침공 7일개봉   3월 18일 카이사르의 유해가 화장되다. 암살자들을 규탄하는
  8월 옥타비아누스, 집정관에 선출되다. 또한 카이사르의 양자 입적을 공인받고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가 되다. 페디우스 법이 성립되다.
  11월 볼로냐에서 안토니우스·레피두스·옥타비아누스의 제2차 삼두정치가 성립되다. 27일에 열린 민회가 5년 기한으로 이를 승인하여, 원로원 주도의 과두정 체제는 완전히 소멸하다.
  11월 28일 제1차 '살생부'가 발표되고 숙청의 태풍이 몰아치다.
  12월 7일 키케로가 살해되다. 42년 원로원에서 카이사르의 신격화를 결의하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연합군은 그리스로 출동하여 필리피에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연합군을 격파,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둘 다 자결하다. 필리피 회전 후, 옥타비아누스는 서부, 안토니우스는 동부를 분담하기로 합의하고, 서쪽과 동쪽으로 갈라지다. 41년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의 초대를 받고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하여 클레오파트라와 애인관계가 되다. 40년 옥타비아누스, 외교담당으로 마이케나스를 기용하다. 36년 옥타비아누스, 아그리파와 함께 일리리아 제압에 전념하다. 34년 제2차 삼두정치의 종결. 안토니우스, 알렉산드리아에서 개선식 거행. 33년 옥타비아누스, 일리리아 전쟁 개선 기념으로 율리아 수도와 옥타비아 회랑을 건설하고, 공공 건축물을 보수하다. 31년 
3월 옥타비아누스, 모든 전력을 이끌고 그리스로 건너가다. 외계 대 침공 7일개봉  
  9월 악티움 해전이 벌어지다. 패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알렉산드리아로 도망치다. 30년 
  7월 31일 안토니우스, 자살을 기도. 이튿날 사망하다.
  8월 1일 옥타비아누스, 알렉산드리아에 입성하다. 카이사리온은 살해되고, 클레오파트라는 자살하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멸망하다. 29년
  8월 옥타비아누스의 웅장하고 화려한 개선식에 로마 시민 열광하다.  9월 옥타비아누스, 신격 카이사르에게 바치는 신전을 포로 로마노에 짓겠다고 공표하다. 28년 옥타비아누스, '황제묘' 건설에 착수. 원로원을 재편성하여 1천 명이 넘었던 의원수를 다시 600명으로 줄이다. 27년
체제 복귀를 선언. 외계 대 침공 7일개봉   1월 13일 옥타비아누스, 공화정
  1월 16일 원로원, 옥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라는 존칭을 부여하기로 결의. 26년 아우구스투스, 이베리아 반도의 완전 제패에 착수. 24년 아우구스투스, 로마 세계의 서부 재편성을 끝내고 3년 반 만에 로마로 귀환. 23년 아우구스투스, '호민관 특권'을 요구하여 원로원의 승인을 받다. 화폐제도 개혁에 착수. 22년 아우구스투스, 밀 확보량이 부족하여 위기에 빠진 수도 로마에 사재를 털어 밀을 공급하다. 19년 로마의 국민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사망하다. 18년 아우구스투스, '간통 및 혼외정사에 관한 율리우스 법' 및 '정식 혼인에 관한 율리우스 법'을 제정하다. 13년 아우구스투스, 레피두스의 후임으로 최고제사장에 선출되다. 12년 아그리파, 사망하다. 9년 '평화의 제단' 완공되다. 엘베 강과 도나우 강을 잇는 방어선이 성립되다. 8년 마이케나스, 사망하다. 4년 친로마파인 유대 왕 헤롯이 사망하다. 2년 아우구스투스, 딸 율리아를 '간통죄'로 종신 유배형에 처하다. 1년 원로원, 아우구스투스에게 '국가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수여하다.  서기4년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를 후계자로 결정하다. 또한 티베리우스의 후계자로 게르마니쿠스를 지명하다. 13년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에게 '최고사령권'을 수여하다. 그후 게르마니아 전선은 게르마니쿠스가 담당하다. 14년 아우구스투스와 공동 통치자 티베리우스의 이름으로 국세조사를 실시하다. 아우구스투스, 『업적록』을 마무리하다. 나폴리에 머물고 있던 8월 19일에 세상을 떠나다.
  9월 17일 티베리우스, '제일인자'가 되어 제2대 황제에 즉위하다. 17년   5월 26일 게르마니쿠스, 개선식을 거행하다. 다음 임지가 오리엔트로 결정되어 떠나다.
티베리우스, 통틀어 28년에 걸친 게르마니아 전쟁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고 라인 강 방위체제를 정비하다. 19년
  10월 10일 게르마니쿠스, 사망하다. 20년 시리아 속주 총독 피소가 게르마니쿠스에게 불복종한 죄로 재판을 받고 자살하다. 21년 타쿠팔리나스가 이끄는 북아프리카의 반란이 기세를 더하다. 갈리아 동부에서 고금리에 반발한 반란이 일어나다. 로마의 라인 강 방위 군단이 즉시 진압에 나서다. 시리아 속주 총독 퀴리누스가 사망하다. 22년 티베리우스, 아들 드루수스에게 '호민관 특권'을 부여해달라고 원로원에 요청하여 동의를 얻다. 23년 드루수스 급사하다. 27년 티베리우스, 카프리 섬에 은둔하다. 29년 게르마니쿠스의 미망인인 아그리피나와 맏아들 네로 카이사르의 유죄가 확정되어 각각 벤토테네 섬과 폰차 섬에 유배하기로 결정하다. 31년
  1월 1일, 아그리피나파 소탕작전의 핵심인물인 근위대장 세야누스가 티베리우스와 함께 집정관에 취임하다. 외계 대 침공 7일개봉
  10월 18일 티베리우스, 원로원에 보낸 서한에서 세야누스를 국가반역죄로 고발하다. 원로원은 사형판결을 내리고 그날로 집행하다. 유배된 아그리피나가 벤토테네 섬에서 사망하다. 33년 둘째아들 드루수스 카이사르도 사망하다. 속주에서 고리대금을 하고 있던 원로원 의원이 고발당한 것을 발단으로 한 금융 불안과 땅값 하락으로 로마에 일대 금융위기가 발생하다. 티베리우스, '공공자금 투입'을 비롯한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아 위기를 일단 진정시키다. 37년
  3월 16일 티베리우스, 나폴리 만 서쪽 끝의 미세노 곶에 있는 별장에서 사망하다. 향년 77세.
  3월 18일, 게르마니쿠스의 셋째아들 칼리굴라, 제3대 황제에 즉위하다.
  9월 27일, 칼리굴라에게 '국가의 아버지'라는 존칭이 주어지다. 39년 국가 재정 파탄이 명백해지다. 40년 칼리굴라, 자신에 대한 암살 음모를 꾸민 혐의로 누이동생 아그리피나와 율리아 리비아를 유배하다. 이 무렵부터 원로원 계급과도 대결 상태에 들어가다. 41년
아그리피나, 아들 도미티우스를 클라우디우스의 양자로 삼다. 그후 도미티우스의 이름은 네로 클라우디우스가 되다. 54년   10월 13일, 클라우디우스가 사망하다. 향년 63세. 같은 날, 네로가 근위병들에게 '황제'의 칭호를 받다. 외계 대 침공 7일개봉   1월 24일 칼리굴라, 근위대장 카시우스 카이레아와 코르넬리우스 사비누스에게 살해되다. 향년 28세. 아내 카이소니아와 딸도 동시에 살해되다. 같은 날, 원로원은 클라우디우스에게 칼리굴라가 갖고 있던 전권을 부여하기로 결의하다. 클라우디우스, 제4대 황제에 즉위하다. 클라우디우스, 알렉산드리아를 정상화하다. 43년 클라우디우스, 브리타니아로 건너가 로마군과 합류하여 콜체스터에 입성하다. 브리타니아 속주화에 대한 기본정책을 결정하다. 48년 클라우디우스의 처 메살리나, 중혼죄를 짓고 클라우디우스의 비서관 나르키소스의 명령으로 살해되다. 49년 클라우디우스, 질녀인 아그리피나(칼리굴라의 누이동생)와 네번째로 결혼하다. 아그리피나, 간통죄로 코르시카 섬에 유배되어 있던 철학자 세네카를 아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나중에 네로 황제)의 가정교사로 삼기 위해 로마로 부르다. 또한 아들의 무술교사로는 나중에 근위대장이 되는 부루스를 임명하다. 50년
원로원, 네로에게 전권을 부여하기로 결의하다. 네로, 16세의 나이로 제5대 황제에 즉위하다. 파르티아, 아르메니아로 쳐들어가 점령하고 볼로가세스의 동생 티리다테스를 왕위에 앉히다. 로마,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코르불로를 총사령관으로 파견하기로 결정하다. 55년 네로, 어머니 아그리피나에게 반항하기 시작하다. 59년 3월 21일, 네로가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살해하다. 60년 5년마다 열리는 '네로 제전'이 처음으로 거행되어 성황리에 끝나다. 62년 근위대장 부루스가 사망하다. 세네카가 은퇴하다. 네로, 아내 옥타비아와 이혼하고 포파이아 사비나와 결혼하다. 또한 옥타비아를 유배형에 처한 뒤 살해하다. 63년 코르불로와 파르티아 왕제인 티리다테스가 직접 만나 회담하다. 티리다테스는 아르메니아 왕관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갈 것을 승낙, 파르티아·아르메니아 문제 사실상 종결. 64년 네로, 나폴리의 야외극장에서 가수로 데뷔하다.
  7월 18일 밤, 대경기장 관람석 밑에 있는 가게에서 난 불이 번져, 아흐레 동안 로마의 대부분을 태우는 대화재가 되다.
네로는 화재 진압, 이재민 구제, 화재 후의 재건대책을 진두지휘하다. 네로, 화재 후의 재건과 도심 개조를 위한 재원 확보를 겸하여 87년 만에 화폐개혁을 실시하다. 네로, '도무스 아우레아' 건설로 시민들의 반감을 사다. 네로, 방화죄 및 '인류 전체를 증오한 죄' 등으로 기독교도를 체포하여 처형하다. 그래도 '네로가 방화를 사주했다'는 소문은 사라지지 않다. 65년 연말에 20∼30명이 가담하여 네로 암살을 획책한 '피소 음모'가 발각되다. 가담자로 의심받은 세네카도 자살하다. 티리다테스, 이탈리아에 도착하여 포로 로마노에서 네로에게 아르메니아 왕관을 받다. 그후 로마와 파르티아 사이에는 반세기 동안 평화가 계속되다. 66년 청년 장교들이 네로를 죽이고 코르불로를 제위에 앉히려 한 '베네벤토의 음모'가 발각되다. 네로, 가수로서의 기량을 시험해보기 위해 그리스 여행을 떠나다. 68년 원로원, 에스파냐에서 궐기한 갈바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다. 로마 시민들이 '식량'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을 계기로 네로에 반대하여 궐기하다. 원로원, 네로를 '국가의 적'으로 선언하다.  6월 9일, 네로 로마 교외의 은신처에서 자살하다.
내란 발발, 베스파시아누스가 평정하고, 제9대 황제 즉위하다. 98년 트라야누스, 제13대 황제에 즉위하다. 101년 트라야누스 황제, 제1차 다키아(오늘날 루마니아) 원정 개시(∼102). 105년 트라야누스 황제, 제2차 다키아 원정 개시(∼106). 117년 하드리아누스, 제14대 황제에 즉위하다. '하드리아누스' 성벽을 쌓아 국경 방위에 힘쓰다. 161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루키우스 베루스 공동 통치 시작. 193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에 즉위하다. 194년 세베루스 황제, 제1차 페르시아 원정. 197년 세베루스 황제, 제2차 페르시아 원정. 211년 카라칼라, 황제에 즉위하다. 212년 카라칼라 황제, 로마 제국 영토 안의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는 칙령을 내리다. 216년 카라칼라 황제, 카라칼라 욕장 건설. 28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즉위하다. 284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제국을 넷으로 분할하여 두 정제(正帝)와 두 부제(副帝)가 각각 분할 통치하게 함.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기독교도 대박해(∼304). 312년 콘스탄티누스, 서방 황제에 즉위하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밀라노 칙령을 내려 기독교를 공인하다. 324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제국을 재통일하고 단독 황제가 되다.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니케아 공의회를 주재하고 교회 내 분쟁을 조정하다. 330년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이 제국의 새로운 수도가 됨. 379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즉위하다. 395년 테오도시우스 황제, 죽은 뒤 로마 제국은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으로 나뉨.
○ 서로마제국 외계 대 침공 7일개봉
395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둘째아들 호노리우스, 황제 즉위 401년 북이탈리아에 침입한 서고트족을 격파, 같은 해부터 궁정을 로마에서 라벤나로 옮김. 410년 서고트족, 로마 약탈. 418년 서고트족, 이베리아 반도에 왕국 건설. 429년 반달족, 북아프리카를 정복하여 왕국 건설. 455년 반달족, 로마 약탈. 476년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황제를 게르만인 용병대장 오도아케르가 폐위시킴. 서로마 제국 멸망.  ○ 동로마제국
395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맏아들 아르카디우스, 황제 즉위. 52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즉위. 로마 영토 회복에 힘씀. 제국의 전성기를 누림. 726년 황제 레옹 3세, 성상 금지령 발포. 1453년 콘스탄티노플,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을 받고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은 멸망함. 그리스도교의 성립과 발전(퍼옴) 이거는요 2단원까지의 내용만 가져왔어염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에 모진박해를 받았지만 교회는 세를 늘려간다.하지만 로마 이교(異敎)의 영향으로 교회에는 그노시스 ·몬타누스 ·마르키온 및 마니교(摩尼敎) 등의 이단(異端)이 생겼다. 이 이단에 대항하여 교부(敎父)라 불리는 뛰어난 교회사상가가 나타났는데, 클레멘스, 오리게누스, 아우구스티누스 등이 특히 유명하며 313년에 이르러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여 그리스도교에 자유를 부여하고 보호하였으며, 393년 황제 테오도시우스는 ‘그리스도교 국교령’을 발포하여 그리스도교 이외의 종교를 배척하였다.  하지만 로마는 395년 서로마와 동로마로 분리되고. 서로마가 476년에 망한다. 로마교황에 종교적 간섭을 하던 비잔틴제국황제는 726년 1차 성상파괴령을 내리고 서로마는 게르만족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데 성상이 중요하다며 반대하다 대립한다. 비잔틴제국도 혼란을 계속하다 1c세기가 지나면서 모든 성물을 파괴하며..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요소들과 교황권 및 필리오퀘(Filioque)라는 문제로 갈등하다. 1054년 동로마와 서로마는 교황과 황제를 파문시키며 완전히 갈라지고 서로마는 로마카톨릭, 동로마는 동방정교회로 갈라진다 로마 카톨릭은 프랑크 왕국을 중심으로 서유럽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으나 서로마가 망했기에 국가의 간섭없이 로마를 중심으로 카톨릭은 발전할수 있었고 로마의 속권과 성지서임권을 획득하며 교회는 강대한 힘을 가지게 되어, 밖으로는 7회에 걸쳐 십자군을 파견하며, 안으로는 학문과 문화향상에 힘을 기울였다. 그후 그리스도교는 유럽 각나라의 권력에 영향을 끼치며 십자군 전쟁과 식민지쟁탈전으로 교세를 전세계에 퍼트린다 1309년 아비뇽유수로 교황권은 급속한 추락을 맞지만. 교회 지도자는 권력을 둘러싼 싸움의 계속으로 분열을 일으켜 대립교황(對立敎皇)이 출현하며 교회는 차차 세속주의에 빠져들었고. 또한 성직자나 수도자의 무지와 도덕성의 퇴폐도 심하였다. 중세 말기 성당건설과 포교를 위하여 많은 돈이 필요해지자 헌금을 권하면서 속죄증명서, 즉 면죄부발행을 남용하여 많은 폐해를 가져왔다.  1453년 동로마의 멸망은 로마카톨릭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한다. 동로마의 학자들이 서방으로 피신을 해 오게 되고, 그들이 가지고 온 헬라어 문헌들, 특히 원문성경이 서방의 학자들에게 유포되기 시작하고,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 이것이 문예부흥의 시작이었다. 학자들은 점점 교황을 중심으로 한 교권이 성경적인 것이 아님을 인식해가기 시작했다. 학자들 사이에는 히브리어, 헬라어 성경을 연구하는 흐름이 퍼져, 교회는 라틴어 성경(Vulgata) 외의 성경을 금지하지만 종교개혁의 욕구를 막을수 없었다. 1517년 교황 레오10세때 마인츠의 대주교(大主敎)교회의 알브레히트가 성베드로대성당을 건립할 재정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판 면죄부에 대해 루터가 그 성사적(聖事的) 효과를 문제삼으며. 면죄부 발행에 반대하여, 그 폐단을 지적하는 등 을 내붙이고 공개토론을 주장한 것이 종교개혁의 실마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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